박노해 시인_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현재는 사진작가와 반전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노해 시인이 2010년 발표한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읽고 인상깊은 시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박노해 시인은 1984년 <노동의 새벽>으로 첫 발을 떼었고 민주화 운동으로 1991년 무기징역에 처해있다가 약 7년만에 사면 석방됐습니다.

 

박노해 시인은 이후 사진작가이자 평화 활동가로써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들을 방문해 사진으로 기록하고 평화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 신작 <너의 하늘을 보아>가 출시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랜만에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1.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작가 인터뷰

 

10년만에 시집을 낸 이유

 

사람은 말할 때가 있고 침묵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은 침묵이 차오를 때 진정한 말이 되지요. 침묵의 크기만큼 시는 깊은 울림을 낳고, 침묵의 깊이만큼 시는 멀리 가는 거겠지요. 너무 쉬운 사랑고백은 믿음이 가지 않잖아요. 그런데 민주화와 자유가 이뤄지면서 누구나 옳은 말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바른 말을 잘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떼처럼 이라는 말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말은 모든 것입니다. 말의 힘은 삶의 힘입니다.

 

긴 수배길과 지하밀실 고문장과 사형과 무기감옥. 석방돼서 나와보니 제가 너무 유명해져 있더라고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혁명가로서 책임을 지고 싶었죠. 그렇게 12년 동안 유명해진 이름이 잊혀지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혁명의 길을 찾아 긴 침묵과 정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왜 지금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말할 때가 된 거겠지요. 가장 훌륭한 계획자는 하늘이시죠. 저는 모든 것을 계획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안에 자기를 던져서 사랑 안에서 길을 잃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랑이 저를 어딘가로 데려다 주지 않을까요?

 

박노해, 2010년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가와의 대화에서

 

2. 우리 함께 걷고 있다

 

오늘도 글을 걷는 우리는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와서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힘든 발자국들은

한 줌 먼지처럼 바람에 흩어지니

그러나 염려하지 마라

 

그 덧없는 길을

지금 우리 함께 걷고 있으니

 

3.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앞 부분 중략, 마지막 3연)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4. 긴 호흡

 

직선으로 달려가지 말아라

극단으로 달려가지 말아라

사람의 길은 좌우로 굽이치며 흘러간다

 

지금 흐름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 때

머지않아 맞은편으로 흐름이 바뀌리라

너무 불안하지도 말고 강퍅하지도 마라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방향을 바꿀 때

그 포용의 각도가 넓어야 하리니

힘찬 강물이 굽이처 방향을 바꿀 때는

강폭도 모래사장도 넓은 품이 되느니

 

시대 흐름이 격변할 때

그대 마음의 완장을 차지 마라

더 유장하고 깊어진 품으로

새 흐름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라

 

삶도 역사도 긴 호흡이다.

 

 

5. 삶과 사람 그리고 시간에 대한 고찰_읽고 난 뒤

 

우리는 인생을 걷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거리로 표현한 말인데요 박노해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서로의 삶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우리는 함께,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느린 호흡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그렇게 걷고 있습니다.

 

결승점이 있는 것은 아닐텐데 우리는 그럼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을 향해서 걸어야 하는지, 내가 지금 잘 걷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들이 많았습니다. 생명, 평화, 나눔의 가치에 대해 이토록 깊게 생각해본 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무심함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방향을 잃고 서성이는 우리들의 삶에 좋은 지침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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