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코보는 일본의 카프카로 불리는 유명한 극작가예요. 모래의 여자는 1967년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건 영화화하면 진짜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스스로가 감독이 되어서 영화화했고 흥행에도 성공했었네요:)

 

그의 소설은 시대를 앞서나가 SF적이고 현대적인 묘사가 무척 뛰어나다는 평을 받습니다. 의사인 아버지 때문에 1세 때부터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냈는데 이때 만난 만주의 사막을 떠올리며 모래의 여자라는 작품을 집필했다고 말했습니다.

 

모래의 여자는 읽는 내내 뭔가 끈적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는데, 글을 통해서 이런 감각적인 느낌이 전해지는 경험은 무척 오랜만이어서 희극적인 내용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소설에서 나온 인상 깊은 구절들을 요약, 정리하고 독서 후기를 적어보겠습니다.

 

1. 본문내용 요약 필사

 

📖모래

암석 파편의 집합체. 때로 자철광, 주석, 그리고 간혹 사금을 포함하고 있다. 직경 1/16~2mm 덧붙여, 암석 파편 중에서 유체에 의해 가장 멀리 이동될 수 있는 크기의 입자.

 

지상에 바람과 흐름이 있는 이상 모래땅의 형성은 불가피한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불고 강이 흐르고 바다가 넘실거리는 한, 모래는 토양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어 다닐 것이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일 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가.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러운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신문

그러나 지금 화를 내면 끝장이다. 중환자는 신문 따위로 흥분하지 않는다. 물론 신문은 읽고 싶다. 풍경이 없으면 그나마 풍경화라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풍경화는 자연경관이 살벌한 지방에서 발달하고, 신문은 인간관계가 소원한 산업 지대에서 발달한다고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물론 꾀병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마치 너무 바싹 감아 튕겨나갈 듯한 태엽을 손안에 꽉 쥐고 있는 것 같다. 언제까지고 이런 일을 참고만 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이 되어가는 대로 그냥 나를 내맡겨서는 안 된다. 나란 존재가 그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를 철저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 눅눅한 모래의 층을 가르는 부삽 소리.. 개 짖는 소리.. 촛불처럼 흔들리는, 먼 자글거림, 말초 신경을 향해 쉬지 않고 쏟아지는 모래소리.. 그럼에도 꼼짝 않고 참아야 한다.

 

뭐 그럭저럭 참아냈다고 하자 그러나 시원한 군청색 빛이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 이번에는 반대로 젖은 해면 같은 잠과 격투를 벌여야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시계뿐만 아니라, 시간 자체마저 움직임을 멈출 수 있다. 신문 기사도 별 변화가 없었다. 어디에 일주일 간의 공백이 있었는지 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신문이 외부와 통하는 창구라면, 그 창구의 유리창은 우윳빛인 모양이다.

 

📖일요일

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식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눈부신 태양으로 충만한 여름은 결국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담배 냄새가 풀풀 나는 신문의 정치란을 깔고 뒹구는 얌전한 소시민의 일요일... 뚜껑에 자석이 붙어있는 보온병과 캔 주스... 줄 서서 간신히 차지한 시간당 백오십 엔짜리 대여 보트와 물고기의 사체가 뿜어내는 바닷가의 납빛 거품.. 그리고 마지막은 피로에 절어 있는 만원 전철...

 

모두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자기 자신을 사기에 걸려든 어리숙한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탓에 열심히 회색 캔버스에다 환상의 제전을 흉내 내는 것이다. 억지로나마 즐거운 일요일이었다고 말하기 위해.

 

2. 독서후기 

 

영화 <듄>은 건조한 사막을 멀리서 보고 온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 <모래의 여자>는 읽는 동안 마치 축축한 몸에 모래가 가득 달라붙은 것 마냥 까슬거림을 느껴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모래를 닦아내고, 파내야만 하는 주인공은 이전에 지낸 도시의 삶과 모래만이 가득한 현재의 삶 속에서 큰 차이가 없음을 발견 한하는데요 작품 속에서 모래는 끊임없이 유동하고 시간 역시 유동합니다.

 

허구의 세계를 창조해낸 작가는 초현실적인 세상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너무나 정밀하게 세상을 표현하고 있어요. 고전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이 작품이 누구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 어떤 작품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며 시대의 변화를 훑는 것인데 아베 코보의 작품은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가까이에서는 <무진기행>과 <고래>가 생각나고, 조금 넓혀서 보면 인물 내면의 변화가 <쇼생크 탈출>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글로 쌓은 단단한 벽이 느껴지는 무척 뛰어난 작품이었어요. 이런 글들을 원문으로 읽는다면 정말 좋을 텐데, 세상 모든 언어를 배울 수는 없으니 이렇게 열심히 필사하고 생각이라도 독후감 형식을 빌려 남기면서 우리말 실력이라도 늘려봐야겠습니다:)

 

#모래의여자 #아베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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