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우울의말들 #에바메이어르

 

평소에 까치글방에서 출판된 책들을 즐겨 읽는 편인데요, 좋은 기회로 서평단에 참여할 수 있어서 조금 먼저 책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인 에바 메이어르는 네덜란드에 살고있는 작가이자 작곡가, 화가, 철학자 겸 방송인입니다. 이 책은 자신이 슬픔과 우울속에서 지나왔던 날들을 반추하며,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와 그 슬픔속에서는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다만 그 내용이 너무 딱딱하거나 차갑지 않고, 충분히 따뜻하며 충실한 조언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우울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명확한 표현으로 적어냈다는 점에서 작가의 뛰어난 역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울증을 겪고있거나 주변에서 우울함을 느끼고 있는 친구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부서진 우울의 말들> 본문을 정리한 뒤 짤막한 소감을 적어보겠습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문장 하나하나마다 곱씹어 읽게 될 작품_에바메이어르 부서진 우울의 말들_까치글방

📖우울의 색

우울은 아주 새까맣기는커녕 검지도 않다. 어쩌면 어둠일 수는 있다. 마치 세상에서 빛이 사라진 밤처럼 주위가 더 위험해진 것 같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낮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무엇이 남아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만약 우울에 색깔이 있다면, 단연 회색이다.

 

그리고 때로는 흰색이다. 흰색은 침묵의 색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색이고, 패배의 색이고, 아무것도 없는 색이고, 상실의 색이다. 영원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의 일부이지만, 우리가 영원 속에서 살 수는 없다. 흰 색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상실

세상 일이 항상 더 나아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균열은 20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다. 상상도 못 할 일이 정말로 일어날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통이나 슬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것은 정말로 부서져버렸다.

 

(중략) 죄책감과 고통은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삶에 새겨지는 흉터로 남는다. 결국에는 무뎌지겠지만, 슬픔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 흉터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뀌어서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달리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항상, 필연적으로 이 세계에 있는 우리의 물리적 존재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육체로서 존재한다. 만약 내가 달리기를 하기로 결심하면, 내 머리가 내 몸을 조정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둘은 서로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와 같다. 만약 내가 달리기를 한 후에 세상이 좀더 편하게 느껴진다면, 그리고 내 두 발로 땅을 딛고 있다면,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처음에는 정말로 하나의 끝이고, 장애물이고, 그 너머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높은 벽이다. 나중에는 우울해지는 것이 풍경의 일부로 고정된다. 그렇다고 마비가 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차이가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과 간간이 찾아오는 우울증은 체념을 불러오는데, 내 경험상 이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 그랬듯이 지나갈 것이고, 지나갈 수 있다. 오늘은 좋은 날이 아니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에서 단순히 견디는 것으로 초점도 바뀐다. 이와 동시에 이런 식의 생각은 나를 더 슬프게 할 수도 있다.

 

📖두려움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어려움을 뚫고 목표를 이루는 엄청나게 열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면서 어렵사리 헤쳐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무엇인가 당신에게 가치있어 보인다면, 그것을 하라,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남은 희망은 내가 땅속에 내리고 있는 뿌리가 나를 굳건히 서 있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는 것이다.

 

2. 독서후기

 

어느정도 터널 속을 지나온 상태에서 읽었음에도 무척 마음이 쓰렸고, 혹시나 지금 먹구름 아래를 걷는 중이었더라면 언젠가 네게도 해가 뜰거야 라는 뻔한 위로가 아니어서 다행인 책이었습니다.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위로를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제는 <내 언어의 한계>인데 책에 적힌 따뜻한 낱말들과 문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원래는 너무나 겸손한 제목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공간을 뛰어 넘어 다른 이의 슬픔에 대해 우리가 절절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울한 마음이 언어로 전해질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일 거예요. 또한 작가의 표현력이 무척 뛰어나다는 말이기도 하구요.

 

우울함은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우울은 비이성적으로 추구하는 물질적인 것들에게서 거리를 둘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또 내 불행을 더 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다면, 스스로를 단련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시간동안 너무 아프겠지만, 행여나 지금 우울의 긴 터널을 걷고 있다면 당신에게도 필연이 우연처럼 곁에 찾아오길 바랍니다.

 

저는 다행히 가장 힘들었을 때 산에 많이 갈 수 있었고, 틈만나면 달렸던 것 같습니다. 그 길 끝에 기쁨은 없었지만 과정 속에서 깊은 숨을 많이 쉴 수 있었어요. 처음으로 스스로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던 때였습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사람은 슬픔을 통해 바뀌어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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