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년이 지나도 그대로 읽히는 작품, 나쓰메 소세키

 

일본 근대문학의 창시자이자 우리나라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예요.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의 끝없는 혈육 다툼에 휩싸인 채 청소년기를 보냈던 기억을 지니고 살아야 했던 그는 작품을 통해 공허함과 아픔에 대해 자주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오랜 외국 생활에서 느낀 외로움과 절망감, 절실함 또한 반영됐을 것이고요.

 

1900년대 초반 영국으로의 유학은 그에게 귀중한 경험을 남겼고 창작을 위한 기반이 됐지만 동시에 그의 정신적 질환을 악화시켰습니다. 생계를 위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는 아사히 신문사의 전속 작가가 되면서 초기에 경쾌하고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가벼운 느낌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후 도련님 등이 이에 해당하는 시기의 작품들이에요.

 

이후 점차 인간의 심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묘사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20세기 근대화를 맞닥뜨린 일본 사회의 문제점과 현대인의 공허함을 잘 표현해냈습니다. 이번에 리뷰할 책인 <그 후>는 나쓰메 소세키가 1909년 발표한 작품입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금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게 묘사되는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되는데요. 작품의 주요 장면들과 문장들을 살펴보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2. 소설 <그 후> 주요 내용

 

p12. 

가도노와 아주머니의 대화

 

선생님은 도대체 뭘 할 생각일까요, 아주머니?

저런 분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지. 걱정할 필요 있을라고.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뭐라도 했으면 해서요.

결혼이라도 하신 다음에 천천히 할 일을 찾으실 생각이시겠지, 뭐.

참 부럽기도 하다. 나도 저렇게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러 다니면서 지냈으면 하네요.

자네가 말이야?

책은 읽지 않더라도 저렇게 놀면서 지낼 수만 있다면..

그런 모두 전생에 이미 정해진 길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지.

역시 그럴까요?

 

p101.

자네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달리 말하면 의지를 실현할 수 없는 사람이지. 의지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왜냐하면 인간이니까. 그 증거로, 자네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어. 나는 나 자신의 의지를 사회에 실현시키려고 하고, 내 의지로 인해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내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는 확증을 가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어. 바로 그런 점에서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자네는 단지 생각만 하고 있어. 생각만 하다 보니 관념 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따로따로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는 거야. 이런 엄청난 부조화를 감내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크나큰 실패가 아닐까? 왜냐고? 내 경우 그런 부조화를 겉으로 드러내지만, 자네의 경우는 속에 감춰둔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으로, 사실 그 정도를 따지자면 겉으로 드러낸 만큼 내가 자네보다 덜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도 나는 자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있어, 그리고 나는 자네를 비웃을 수가 없어.

 

104.

모두 빡빡하게 짜인 교욱을 받고, 그러고 나면 눈 돌릴 틈도 없을 정도로 혹사를 당하니 너나 할 것 없이 신경 쇠약에 걸리게 되지. 한번 이야기를 시켜보게나. 대개는 바보일 터이니까. 자신의 일과 자신의 현재, 아니 눈앞의 일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한 상태이니 어쩔 수 없긴 해. 정신적인 피로와 신체적인 쇠약은 불행하게도 항상 붙어 다니는 법이니까.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타락해 가고 있어.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밝게 빛나고 있는 구석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지 않은가? 온통 암흑이야. 그 속에서 나 혼자만이 뭐라고 말한 들, 그리고 무슨 일을 한들 소용이 없지. 나는 원래 게으른 편이야. 아니 자네와 가깝게 지내던 때부터 나는 게으름쟁이였어. 그때는 억지로라도 자신만만해했으니, 자네에게는 재능 있고 유망하게 보였을 거야.

 

142.

다이스케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의 히라오카는 남이 울어주는 것을 기뻐했었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만 그러한 기색은 조금도 나타내지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일부러 남의 동정을 물리치려는 듯이 행동했다. 고립되어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이거나, 혹은 그것이 현대 사회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아서거나 그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히라오카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의 다이스케는 남을 위해서 울기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점점 울 수가 없게 되었다. 울지 않는 편이 현대적이어서는 아니었다.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울지 않으니까 현대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서구 문명이 압박을 받아서 그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하며 격렬한 생존 경쟁의 무대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남을 위해서 울 수 있는 사람을 다이스케는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었다.

 

157.

다이스케는 때때로 평범한 외부 세계로부터 의외로 강렬한 자극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자극이 심해지면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의 반사도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런 때는 되도록 세상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아침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잘 생각만 했다. 그 수단으로써 아주 은은하고, 그러고 달콤한 향이 적은 꽃향기를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눈을 감고 눈동자에 쏟아지는 빛을 차단한 채 콧구멍만으로 조용히 호흡하는 사이에, 베갯머리의 꽃이 술렁거리는 의식을 점점 꿈속으로 불어간다. 그것이 성공하면 다이스케의 신경은 다시 태어난 듯이 차분해지고 세상과의 관계를 이전보다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229.

평소 다이스케는 만일 감자를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히 여기게 된다면 인간은 끝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앞으로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서 금전상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면 그는 싫어도 다이아몬드를 내던지고 감자에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는 자연으로서의 사랑만이 남을 뿐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남의 아내였다.

 

그는 누워서 끝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그의 머리는 언제까지나 그 어떤 결론에도 도달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수명을 정할 권리가 없듯이 자신의 미래도 역시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자신의 수명을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자신의 미래의 모습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그리고 헛되이 그 환영을 붙잡아보려고 애썼다.

 

3. and then, 그리고 나서

 

우리가 근현대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이제 막 쓰이고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 이런 짜임새 있는 모습의 소설을 보면 복잡한 감정과 존경심 같은 게 생겨날 수는 있었겠다 싶어요. 지금 읽어도 엄청난 문장들과 매력 있는 인물들로 가득 차 있는데 100년 전의 세상에서 그의 작품을 접했다면 벽을 만난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그의 문장은 담담하지만 매우 감각적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합니다. 

 

다이스케 스스로를 관찰하고, 주변 가족들과 친구들을 관찰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관찰한 뒤 담담하게 적어내는 그의 독백은 책을 읽는 동안 다이스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몰입하게 해 줬던 것 같습니다. 자연(사랑)을 향하는 그의 마음을 결정지은 후, 그 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이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는 역설적이게도 더 높아진 것 같아요.

 

그가 다이아몬드 대신 선택한 감자와 같은 사랑의 끝은 어떻게 됐을까요. 현실 세계에서는 전쟁을 맞이하고 힘든 현실 속에 스러지는 모습이 가장 일반적인 결말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만. 어차피 잠깐 스쳐가는 인간들의 짧은 생 속에서 찰나의 순간에 그 둘이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선택일 수 있겠다 생각해봅니다. 여기까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 대한 독서 리뷰였습니다.

 

#민음사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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